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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적명
익산 왕궁리유적(益山 王宮里遺蹟)
구분
유적발굴조사
조사기간
1989년~ 현재
조사자료
원문자료있음

익산 왕궁리유적(사적 제408호, 1998. 9. 11 지정)은 「왕궁평」·「왕검이」·「왕금성」이라고 불리며, 이곳에 고대의 왕궁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되어 학계는 물론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 곳이다. 역사적으로 백제 말기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이곳이 정치ㆍ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임이 『삼국사기(三國史記)』 등의 문헌을 통해 널리 알려져 왔으므로 이 일대가 마한(馬韓)의 기준(箕準) 천도설(遷都說), 백제 무왕(武王)의 금마천도설(金馬遷都說) 혹은 별도설(別都說), 통일신라시대 안승의 보덕국(報德國) 도읍설(都邑說), 후백제 견훤(甄萱)의 도읍설 등 고대의 왕궁과 관련된 여러 학설이 꾸준히 제기되어 오고있다. 이후 1965년 왕궁리 오층석탑(국보 제289호, 1997. 1. 1 지정)의 해체ㆍ복원 당시 탑 내에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금제금강경판(金製金剛經板)과 유리제사리병(琉璃製舍利甁)ㆍ 금제합(金製盒)ㆍ각종 장엄구(莊嚴具)등이 발견되어 국보 제123호로 지정되었고, 탑 주변에서는 「상부을와(上部乙瓦)」ㆍ「관궁사(官宮寺)」등의 명문기와가 출토되었다. 따라서 이 사지가 왕궁과 관계되는 궁내사원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유적의 성격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주게 되었다.

익산 왕궁리유적은 백제문화권 유적정비사업의 일환으로 1989년부터 현재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(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)에 의해 연차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왔다. 조사결과, 백제 사비시대 왕궁성의 구조 및 성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, 동서 240m, 남북 490m 내외의 궁성벽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평면 장방형으로 확인되었다. 성벽 관련시설로는 문지 7개소를 비롯하여 수구, 암거 등이 확인되었다. 동서석축4를 기준으로 구획된 전반부는 궁궐, 후반부는 후원영역이며 궁궐영역에 7×4칸 규모의 전각건물지 및 와적기단건물지 등이 배치되어 있다. 동서석축4와 인접하여 정원시설이 확인되었고 후원영역에는 대규모 수로시설(環水溝, 曲水路)이 확인되었다. 그 외 공방지 등 생산시설, 석탑·금당·강당지 등 사찰시설도 조사되었다. 유물은 수부(首府)명 인장와, 연화문 수막새, 중국제 청자, 연가 등 유물 11,000여 점이 출토되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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